18세기 말, 영국의 경제학자이자 성직자였던 토머스 로버트 맬서스(Thomas Robert Malthus)는 당시 세상을 충격에 빠뜨리는 주장을 내놓았다. 그의 저서 "인구론(An Essay on the Principle of Population, 1798)"은 경제학, 사회학, 심지어 정치에도 거대한 파장을 일으켰다. 요약하자면 맬서스는 이렇게 말했다.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지만,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즉, 인간은 계속해서 번식하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지만, 자연은 그렇게 너그럽지 않다는 것이다. 결국 인류는 빈곤과 기아를 피할 수 없다는 암울한 전망이었다.
인구는 기하급수, 식량은 산술급수?
맬서스의 핵심 논리는 경제학적 직관에 뿌리를 두고 있다.
- "기하급수적 증가(Geometric Growth)"란 1, 2, 4, 8, 16처럼 빠르게 증가하는 방식이다.
- "산술급수적 증가(Arithmetic Growth)"란 1, 2, 3, 4, 5처럼 일정하게 늘어나는 것이다.
맬서스는 인구는 출산율 덕분에 급격히 늘어나는 반면, 식량 생산은 토지라는 제한된 자원에 의해 느리게 증가한다고 보았다. 결국 인구가 식량 공급을 초과하게 되면 "자연적 제약(Natural Checks)"이 작동한다. 이는 질병, 기근, 전쟁 같은 인구 감소 요인을 뜻한다.
인구론이 경제학에 남긴 유산
맬서스의 인구론은 경제학에서 "자원 한계(Resource Constraint)"라는 중요한 개념을 발전시키는 데 기여했다. 생산성 향상 없이 인구만 늘어나면, 1인당 생산량은 줄어들고 결국 생활수준은 악화된다는 논리다. 이는 고전 경제학(Classical Economics)의 기본 철학, 즉 경제적 자원은 한정되어 있고 인간의 욕망은 무한하다는 가정을 강화하는 역할을 했다.
또한 맬서스는 "생계임금 이론(Subsistence Wage Theory)"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 이론에 따르면 노동자의 임금은 생존 가능한 최저 수준에서 결정된다. 인구가 증가하면 노동 공급이 늘어나고, 임금이 하락해 다시 생계 수준으로 수렴한다는 구조다.
맬서스의 비관론은 맞았을까?
역사를 돌이켜보면, 맬서스의 비관적인 예언은 완전히 맞지는 않았다. 19세기와 20세기에 들어 산업혁명과 농업혁명 덕분에 생산성이 폭발적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기술 혁신은 토지의 한계를 극복하고, 식량 생산량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렸다. 오늘날 선진국에서는 인구 감소를 걱정하는 시대가 오히려 열렸다.
하지만 맬서스의 경고는 무의미하지 않았다. 개발도상국에서는 여전히 인구 증가와 자원 부족 사이의 긴장이 존재한다. 또한 기후변화, 식량 위기, 물 부족 같은 글로벌 문제들은 맬서스가 지적한 "자연적 제약"이 현대판으로 돌아온 모습이기도 하다.
신(新)맬서스주의의 등장
20세기 중반 이후, "신맬서스주의(Neo-Malthusianism)"라는 사조가 다시 등장했다. 이들은 인구 증가가 환경 파괴, 자원 고갈, 기후변화 등을 심화시킨다고 경고한다. 특히 폴 에를리히(Paul Ehrlich)의 저서 "인구 폭탄(The Population Bomb, 1968)"은 맬서스적 공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사례다. 신맬서스주의자들은 정부가 출산율을 조절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인구 문제를 정책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논의를 본격화했다.
오늘날 경제학에서는 단순한 인구 수가 아니라 "인구구조(Demographic Structure)"에 주목한다. 고령화, 노동 가능 인구 감소, 출산율 저하 같은 문제가 미래 경제성장률을 결정하는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 맬서스는 인구를 단순한 숫자 증가로만 봤지만, 현대 경제학은 인구의 질(Quality)과 경제활동참가율(Participation Rate)까지 함께 고려한다.
예를 들어, 일본은 고령화로 인해 경제성장이 둔화되었고, 한국도 비슷한 경로를 밟고 있다. 이는 맬서스가 우려했던 "인구와 경제 간 불균형"이 다른 형태로 다시 나타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